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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유니버셜 풍경

사진을 다시 보니 그날 공기의 온도까지 같이 떠오른다. 오사카 유니버셜 스튜디오에 들어가자마자 느꼈던 그 묘한 설렘. 놀이공원이라는 공간이 원래 그렇긴 한데, 여기는 조금 다르다. 그냥 놀이기구 타러 온 곳이 아니라, 잠깐 현실을 내려놓고 다른 세계로 들어온 느낌에 더 가깝다. 입구를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면서부터 시선이 바빠진다. 어디를 봐도 그냥 지나칠 수 있는 풍경이 하나도 없다.

사진 속 풍경은 특히 기억에 남는다. 나무 데크로 된 길 위를 천천히 걷고 있는데, 옆으로는 물이 잔잔하게 흐르고, 그 너머로는 롤러코스터 레일이 크게 휘어져 있다. 쇠 구조물이 주는 차가운 느낌과, 물과 나무가 주는 따뜻한 느낌이 이상하게 잘 어울린다. 현실 같으면서도 영화 세트장 같은 기분. “아, 여기가 유니버셜이구나” 하고 실감이 나는 순간이다.

사람들도 많았다. 사진 속에 보이는 것처럼 삼삼오오 모여 사진을 찍는 사람들, 벤치에 앉아 잠깐 쉬는 사람들, 어디론가 급하게 이동하는 사람들까지. 각자 목적은 다 다른데, 묘하게 모두가 여유로워 보인다. 바쁜 일상에서는 보기 힘든 표정들이다. 웃고 있거나, 멍하니 풍경을 보거나, 아무 말 없이 서 있어도 불편해 보이지 않는다. 이 공간에서는 그게 자연스럽다.

놀이기구에서 들려오는 소리도 인상적이었다. 멀리서 들리는 비명 같은 환호, 레일 위를 빠르게 지나가는 소리, 그리고 다시 찾아오는 짧은 정적. 그 리듬이 계속 반복되는데도 전혀 시끄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배경음처럼 공간에 녹아든다. 괜히 발걸음을 멈추고 한 번 더 바라보게 된다.

이 풍경을 보면서 문득 여행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꼭 유명한 놀이기구를 다 타야 하는 것도 아니고, 맛집을 줄 서서 먹어야만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서서, 바람 느끼고, 주변을 구경하는 시간이 오히려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사진을 찍은 이유도 사실 “기록용”이라기보다는 “이 순간을 놓치기 아까워서”였던 것 같다.

해외에 나오면 평소에 안 하던 생각도 하게 된다. 한국에서는 늘 일정에 쫓기듯 움직이는데, 이곳에서는 굳이 서두를 이유가 없다. 다음 일정이 있어도 잠깐 늦어져도 괜찮을 것 같은 여유. 유니버셜이라는 거대한 테마파크 안에서조차 그런 여유를 느꼈다는 게 조금 아이러니하다. 사람도 많고, 소리도 큰데 마음은 오히려 차분해진다.

사진 속 롤러코스터를 보며 “저건 탈까 말까” 고민하던 기억도 난다. 막상 타면 무섭다고 소리 지를 게 뻔한데, 막상 안 타고 지나치면 또 아쉬운 마음이 드는 그 애매한 상태. 결국 타긴 탔고, 끝나고 나서는 “그래도 타길 잘했다”라는 뻔한 결론에 도달했다. 여행에서는 이런 뻔한 결론이 오히려 정답처럼 느껴진다.

데크 위를 걸으면서 나무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 물 위에 반사되는 빛, 멀리 보이는 건물들까지 전부 하나의 장면처럼 느껴졌다. 일부러 연출한 것 같지만, 동시에 너무 자연스럽다. 이런 공간을 만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과 계산이 있었을지 생각해 보면, 그 자체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즐기기만 해도 되는데, 괜히 속으로 감탄하게 된다.

여행을 다녀오고 나면 늘 비슷한 생각을 한다. “또 가고 싶다”보다는 “이때 이런 기분이었지”라는 감정이 먼저 떠오른다. 유니버셜에서 찍은 이 풍경도 마찬가지다. 놀이기구 이름이나 정확한 위치보다, 그날의 공기와 분위기, 걷던 속도 같은 것들이 더 선명하다. 사진은 그 기억을 다시 꺼내는 스위치 같은 역할을 한다.

언젠가 다시 오사카에 가게 된다면, 유니버셜을 또 갈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만약 가게 된다면, 예전처럼 바쁘게 다니기보다는 이런 풍경 앞에서 조금 더 오래 서 있고 싶다. 굳이 사진을 안 찍어도 괜찮고, 아무 말 없이 같이 보고 있어도 좋은 시간. 여행이란 결국 그런 순간들을 몇 개 챙겨 오는 게 아닐까 싶다.

이 사진 한 장 덕분에 오늘은 잠깐이나마 오사카에 다시 다녀온 기분이다.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마음 한쪽에는 아직도 그 나무 데크 위가 남아 있는 느낌. 그래서 오늘 하루는 괜히 조금 느리게, 조금 여유 있게 보내도 될 것 같다. 여행의 잔상은 그렇게 일상 속으로 슬며시 스며든다.